시청 앞에서의 군중이 물결처럼 흐른다.
신문로를 막아서니 을지로로, 종로로, 그리고 안국동까지 거침 없이 흐른다.
일사분란한 구호는 없다.
북소리도,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선동적인 노래도 없다.
다만 기꺼이 군중이 된 '개인'들은 작은 피켓으로 성토할 뿐이다.

"청와대로 쥐새끼를 잡으러 가자"는 외침에 분노와 비아냥이 뒤섞인다.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전깃세 아깝다 불꺼라'를 외치더니,
'조중동은 쓰레기'라며 침뱉고 또 밀려간다.
넥타이 부대들은 캔맥주로 건배를 하며 MB를 조롱하고 크게 웃는다.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는 '명박 지옥 탄핵 천국'을 티셔츠에 새기고 나왔다.
젊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싣고 나온 유모차로 발언을 대신한다.

이것은 시위이자 축제다.
2002년 월드컵이 선사한 광장의 쾌감은,
효순, 미선 사건 때,
노대통령 탄핵 사건 때 촛불로 불붙더니,
이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분노가 난장의 희열과 어울리며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정치적 발언의 형태로 폭발한다.
그 자체가 거대한 스펙터클이다.

저 거리를 돌맹이 들고 내달리던 때가 있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야 했던 그 시절엔 단지 갑갑함만이 소용돌이쳤다.
갇힌 해방구 안에서의 일시적 쾌감은 불안을 동반했다.
그러나 이 축제에는 신명이 넘친다.
신명으로 기만적 권력의 철옹성을 난타한다.
물결을 보고 있자니 울컥했다.
그것은 개인들의 자발성이 결집돼 도도하게 출렁이는 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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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드(NO KID):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NO KID) 상세보기
코린느 마이어 지음 | 이미지박스 펴냄
<노 키드(NO KID)>는 "아이를 낳으면 행복할까"라는 냉소적인 질문을 던지는 에세이다.「뉴욕타임스」에서 '프랑스 사회에 반대하는 히로인'으로 소개된 바 있는 심리학자 코린느 마이어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3M흥업이 제작하는 영화 프로그램 '씨네파파라치'의 메이크업 담당이 최근 신혼 살림을 꾸렸다. 며칠전 녹화가 끝난 뒤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결혼 선물로 이 책을 건넸다. 주변에서 폭소가 터진다. 이제 막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이에게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는 듯한 표정들이다.

결혼 생활 12년째로 접어들었지만, 나는 아이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를 갖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아이 없는 삶을 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부모 자신이 생명을 잉태하는 '신'의 노릇을 떠맡는 일과 다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신이 불완전자인데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것도 불합리와 부조리로 가득찬 세상에 내놓는 일을 감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게다가 태어남을 선물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선물까지 덤으로 안겨주는 일이다. 그 잔인한 일을 할 자신이 내겐 없다.

결정적으로, 나는 2세에게 이 세상이 한번 살아볼만한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조기 교육이니 어쩌니 하는, 무한 경쟁 사회의 논리에 내몰릴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아이들이 그렇다. 자라 나서는, 안정과 부를 독식한 극소수의 승자보다 일상적인 불안에 노출된 대다수 비정규적 삶에 포함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게다가 환경은 더욱 파괴되고, 시도 때도 없이 확산되는 전염병 공포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광우병 소의 수입도 막지 못한 부모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살아볼만한 세상을 제시할 도리는 없다.

책은 이런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는 판단에 근거해 독자들에게 '아이를 낳지 말 것'을 강력 권고한다. 저자는 양육의 조건은 점점 더 악화되는데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예로 들면서, 한편으로는 부모로서의 삶보다 '욕망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삶에 가치 부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는 기생충이다. 기생충을 낳는니 지골로를 맞이하는 편이 낫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미래 노동 인구의 감소를 염려하는 '애국적' 출산 장려주의자들에 대항한 반대 논리도 있다. 인구가 줄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세계 인구가 늘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개체수가 늘어 생태계가 위험에 빠지면 스스로 개체수를 줄이는 게 생태계의 자율 조정 기능이다. 헌데 자기 나라의 경쟁력만을 위해 개체수를 늘리는 건 인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장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지구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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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이상한 우연의 일치가 생길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예전에 알고 지냈던 지인들로부터 연락 전화가 온다.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거의 매일 그런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떤 에너지의 파장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떠올리게 한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그런 전화가 걸려온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뭐 어쨌든 그들이 나를 기억 속에 담아 두었다는 것도 고맙고, 그 기억을 끄집어내 흔쾌히 연락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사실도 고마운 노릇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 아니던가.

가끔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훑어볼 때가 있다. 약 300여 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는데 개중엔 얼굴이 가물가물한 이도 있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번호가 저장돼 있기도 하다. 살면서, 너무 많이 까먹는다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다. 특히 언젠가 인사를 나누며 만났던, 그것도 번호까지 저장할 정도의 사람을 새카맣게 망각했다는 건 스스로에게 참담함을 안겨준다.

이렇게 무심한 나를 요즘 걸려온 전화들은 '이눔~'하고 화들짝 깨웠다. 그들의 고마운 전화가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꾸 잊어가고 있는 나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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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러시아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모스크바에서 빼째르부르그 행 밤 기차를 탔다. 침대 칸에서 한창 자고 일어나보니 해는 거의 중천에 떠 있는데 기차가 황량한 벌판 한 가운데 멈춰 서 있는 것이다. 시각으로 봐선 벌써 목적지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모스크바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어 노어가 능통한 선배가 동행했으니 망정이지, 24시간을 꼬박 열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우리는 하마 터면 영문도 모른 채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유는 앞서 달리던 열차에 테러 사건이 벌어져 열차 한 량이 탈선했기 때문이란다. 아마 체첸 반군의 소행이 아니겠냐는 추측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선배는 이게 왠 날벼락이냐며 적잖이 당혹스러워 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TV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던 테러 사건이 내가 탄 열차의 바로 앞에서 벌어졌고, 그 여파로 우리는 뻬째르부르그를 향해 느릿느릿 구불구불 우회로를 찾아나선 기차에 우리의 운명을 의탁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식당칸에서 넉넉한 식량과 음료수를 확보한 우리는 그 지루하고도 지루한 시간을 마치 모험에 나선 톰 소여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꽤 흥겹게 보냈다. 선배는 우리의 그런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내 안절부절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선배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게 러시아는
자신의 일상을 영유하는 공간이었으므로, 그런 불편함이 더욱 짜증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객의 입장이었던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그 돌발적인 불편함이 오히려 여행의 흥을 돋우는 각별한 이벤트와도 같이 느껴졌던 것이니, 같은 상황이 입장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계기였다.


이를테면,
재난 영화를 관람할 때 느끼는 재미란 것 역시 아마도 내가 러시아에서의 기차 안에서 느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재해의 현장은 등장 인물들을 극단의 공포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우리는 그런 살풍경을 손에 땀을 쥐게 되며 바라보지만 만약 스크린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그 재난에 동참할 수 없는 객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된다면, 아마 10분도 채 못 견디고 극장 문을 뛰쳐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재난 영화를 즐기게 만드는 진짜 심리적 기제는, 객석에 앉아 있는 나만큼은 안전하다는 보장이다.


다시 러시아의 기차 안으로 돌아가 본다면, 나는 그 때 우리 스스로는 안전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선배는, 체첸 반군과의 시가지 교전 현장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사이를 기어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로선 불안이 엄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이 잇따라 무너진 뒤, 내가 지하철 타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말이다.


중국 쓰촨성에서 일어난
대지진 소식이 연일 뉴스를 달구고 있다. TV를 통해 전해오는 현장의 모습은 참혹해 보이지만 브라운관은 여전히 내 일상을 위협하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 거리감을 확보해주고 있다. 굳이 역지사지의 미덕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러시아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그들이 당하고 있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가늠하기 위 노력해 보기로 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여행주간지 '트래비' 최근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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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암스

음악 일기 2008/05/22 23:57
MBC FM 푸른 밤 방송 준비를 하다가 모처럼 존 윌리암스 아저씨가 작곡한 유명 영화들의 메인 테마들을 들어봤다. 늘 스타워즈와 슈퍼맨, 인디애나 존스가 오락가락 헛갈렸는데, 들어도 뒤돌면 또 헛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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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부터 MBC FM의 '푸른밤'의 금요일 코너 '필름 속을 걷다'에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DJ를 하던 성시경 씨가 빠지고 요즘 한창 주가 상승중인 알렉스가 새 DJ로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3주 정도는 4인조 그룹 '스윗 소로우'가 임시 DJ를 맡게 된다고 합니다.

워낙 성시경 씨가 탄탄한 고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제가 맡은 코너를 담당했던 이동진 기자 역시 '금동진'이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인기 게스트였던지라 심적 부담이 작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기존 진행자와 게스트에 대한 청취자들의 애정이 뉴페이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죠.

그런데도 덜컥 맡겠다고 나선 것은, 게다가 '당분간 라디오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접은 이유는, 심야 음악 방송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잠못 든 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청취자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청춘기의 바로 제 모습이었으니까요. 그 감수성에 다시 한번 동참해 소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게다가 저는 녹음 방송보다 생방송의 스릴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테이블에 올려진 야식을 먹으며 분주하게 오가는 스탭들의 모습, 잔뜩 긴장한 채 대본을 들여다 보고 있는 디제이의 얼굴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청취자들의 반응들, 그 모든 것들이 제겐 모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첫 방송에 대한 반응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스탭들도 좋아해주고, 무엇보다 디제이로 나선 스윗 소로우 멤버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을 반짝이며 아주 재미있게 경청해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게시판을 통해 감지되는 청취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구요, "얜 또 뭐야, 이동진 기자 다시 데려와~!" 하는 얘기가 나올까봐 잔뜩 긴장했는데, 그럭저럭 합격점을 받은 것 같아 안심입니다.

사실 영화에 대한 애정의 깊이와 내공으로 치면 이동진 선배를 따라가기 벅차죠. 그 분에 비하면 전 '나까' 중의 나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YTN 사회부에서 굴러 먹다 한국영화 전성기에 냅다 편승한 B급 영화기자죠. 그럼에도 이런 '나까성'으로 무장한 채 영화와 관련해 가볍게 툭툭 던지는 수다가 아주 의미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전 언제나 영화를 그렇게 툭툭 주고 받는 술자리 안주처럼 생각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모처럼 제가 즐거울 수 있는 방송을 만나니 의욕이 생깁니다. 방문자 제위께서도 기회가 되면 일청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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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상세보기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펴냄
세상을 거듭나게 하는 원동력, 작고 사소한 힘의 재발견! 인터넷을 많이 쓰면 정보량도 늘어나고 더 똑똑해질까? 잘 놀아야 일도 잘하는 것일까? 네트워크 시대에 권력과 권위는 누구에게로 옮겨가고 있는가?

"인터넷을 매개로 한 일시적 관계들이 늘어나고 개인은 이러한 일시적 관계들이 맺어지는 결절점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면서, 형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관계 속에서 사적 영역의 경계도 끊임없이 재구성되게 되었다. 이제 사적 영역은 과거와 같이 보호되어야 할 대상만이 아닌 전략적으로 조작되는 대상이 되었으며,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협상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사적 영역에 대한 개인의 판단과 선택의 중요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이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중요해졌다."

"결국 진짜문제는 인터넷 담론 공중이 과연 정치적 읽기와 쓰기의 능력은 물론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고 동시에 '상호성', '관용', '절차성', '협동 의지' 등을 지니고서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는 공중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


며칠전 개그맨 김학도 씨가 툭 건넨 책이었다.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중인 그가 한 권 받았다며 나더러 읽어 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웹2.0 시대의 흐름에 대한 뻔한 소리를 되뇌이는, 그저 그런 트렌디 저서가 아닐까 싶어 서재 한 곳에 던져 놓았다. 나중에 슬쩍 들춰 보니 이 책, 꽤 경청할만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각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들이 풍부한 문화사적, 사회학적 배경 지식을 동원해 분석하는 웹2.0 환경론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매트릭스' 세상의 실체를 가늠케 해준다. 책은 기존의 권위에 대항한 개인의 승부처로써의 네트워크를 주목하는 가운데, 미디어2.0의 흐름이 새로운 방식의 의제 설정과 문화적 변혁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책에 따르면, 나는 이미 네트워크 내 권력 이동의 중심에 놓여 있는 셈이다. 무책임한 장밋빛 청사진의 나열이 아니라, 마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들의 제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정독한 미디어 관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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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과 나, 그리고 목포의 김공이 홍대앞에서 만나서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춤추러 간다. 김공이 좋아하는 '스튜디오 80'이나 내가 좋아하는 '올드락'에 가면 나는 반드시 이 음악을 신청한다. 나는 아직까지 이 곡만큼 춤 추기 좋은 곡을 듣지 못했다. 매우 퇴폐적인 흔들림을 이끄는 이 곡에 몸을 맡기면 못추는 녀석이나 잘 추는 놈이나 똑같아 진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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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이 들어 요즘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이다. 뒤늦은 향학열? 그게 아니라 영화 기자랍시고 대충 주워들은 걸로 더 이상 혹세무민하기엔 무식함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걸 절감하기 때문이다. 채워야 비워낼 수 있으니.
원서를 준비하면서 몇가지 갈등이 있었다. 우선 한 한기에 600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가 가장 먼저 부딪힌 걸림돌이었다. 교육 비용의 수익자 부담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이 나라에서 학사를 넘어 석사나 박사까지 가방 끈을 늘린다는 것은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교육의 최종 수익자는 개인이 아닌 국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르면 국가가 학비를 대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내 생각이 택도 없다고 말한다. 좋다. 수익자가 나 자신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모순은 남는다. 교육 서비스라는 용역을 거액을 내고 구매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고 하는 일련의 전형 절차가 가당치 않은 일처럼 여겨진다. 구매자가 그 판매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가.

2년 전에도 지원했던 대학원 면접에서 "한 학기 정도 커리큘럼을 보고 계속 다닐지를 판단하겠다"는 말 때문에 낙방했다. 붙으려면 면접관 교수들에게 간 쓸개를 다 내어 보여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더해 학위의 희소성을 이용한 판매자 우위의 상황이라니...참 공부하기 지지리도 힘든 나라다.

여하튼 일단 그 얼토당토 않은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배알이 심히 뒤틀리지만 어쩌겠나. 커리큘럼이라는 강제력을 들이미는 상아탑에 들어가지 않으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할 수 있는 의지력이 안타깝게도 나에겐 없다. 그러니 찍 소리 말고 고개를 숙여야 하리라.

또 한가지 갈등은 전공과 학교 선택이었다. 영화 기자인만큼 남들 하는대로 영화를 전공하는 게 지당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나는 이상하게도 싫었다. 게다가 학위를 딴 뒤 한 자리 하려면 중대나 동대 쪽을 기웃거려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영화판에서 두 학교 출신들이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거다.

헌데, 그 학교들 출신들이 영화판의 메인스트림이라는 게 끝내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아웃사이더 감성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계에 한자리씩 하고 있는 그들이 내 스승과 선배, 또는 학우들이 될 터인데, 기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학연으로 묶이게 되는 상황이 두려웠다. 해서 결국 두 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했다. 전공 역시 영화 이론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학구파들에게 맡기고, 저널리즘과 영상 커뮤니케이션 쪽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누군가는 나한테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한마디 한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말이다. 그 와중에 영화학계 쪽의 한 교수님으로부터 "바르게 생각했다"며 모처럼 칭찬을 들어 괜히 흐믓했다. 뭐, 지금 시점에서 이런 건 다 괜한 치기다. 아직 붙지도 않았거니와, 붙는다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까마득하기만 하다. 어서 학업 계획서나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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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간지 표지를 보면 영화판 사정의 단면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한국영화 배우들이 표지를 잇따라 장식하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최근 영화주간지들을 보면 외국 배우들이 참 많이 나온다.

내가 7년간 몸담았던 FILM2.0만 해도 지난 3월 이후 발행된 11번의 주간지에서 한국영화 출연배우가 표지 모델로 등장한 횟수는 단 3회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비'가 한번 나오긴 했으나 그는 할리우드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배우 자격으로 포즈를 취한 것일 뿐이고, 나머지는 <천일의 스캔들><연의 황후><아이언 맨><인디애나 존스> <라스베거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 등의 배우들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대한민국 영화주간지의 표준'을 자처하는 씨네 21도 크게 다르지 않다. 90년대 중반 창간했을 때만 해도 고집스럽게 한국영화 배우들을 표지 인물로 내세웠던 이 잡지의 전통 역시 시나브로 사라졌다.  

이런 정황은 영화주간지에서 표지로 내세울만한 한국영화 배우가 없다는 얘기이고, 그만큼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죽을 쑤고 있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필연적으로 대중 잡지는 독자들의 관심 방향과 시장의 트렌드를 좇을 수밖에 없으니,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넘어 공급 자체가 급감한 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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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한국영화 사랑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이런 상황이 썩 씁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영화 매체의 존재 이유와 관련해 다른 차원의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지난주 지하철 가판대에는 쌍둥이 인디애나 존스가 나란히 걸렸다. FILM2.0과 씨네21 모두 해리슨 포드를 표지 인물로 내세운 것인데, 문제는 두 표지 모두 해리슨 포드가 입은 옷과 포즈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영화사에서 제공받은 사진을 썼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 매체가 거의 완전히 영화 자본에 포획됐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오늘날 영화 잡지의 표지는 거의 광고판과 같은 취급을 당한다. 영화사가 광고 게재를 대가로 표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생존 자체가 절박해진 주간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인디애나 존스>는 동시에 두 잡지의 표지를 공략(?)할 경우, 노출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홍보 효과는 배가됐을지 모르나, 두 주간지의 개성은 사라졌다. 독점을 향한 자본의 욕망은 늘 이렇게 다양한 개성을 죽이는 방향으로 운동하기 마련이다.

이게 어디 할리우드 영화 뿐이랴. 이번호 두 주간지에는 신작 <님은 먼 곳에>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가 나란히 실렸다(얼마전 나는 그가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며 토크2.1로 다뤄달라는 FILM2.0의 요청을 정중히 사양했다. 인터뷰는 편집적 필요에 의해 기자가 요청하는 것이고 취재원이 수락하는 게 정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선 이 반대의 경우도 자주 벌어진다). 게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봉준호와 최동훈의 신작 얘기가 각각 특집과 기획으로 다뤄졌다. 두 매체의 관심사가 우연찮게도 동시에 똑같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전통적으로 영화 주간지들은 한국 영화산업의 동반자와 같은 대우를 받아 왔다. 한국영화의 전성기와 영화 주간지들의 전성기가 병행돼 온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영화 매체 기자 출신 가운데는 스스로 영화판에 입문한 경우도 꽤 된다. 스스로를 광의의 '영화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내 스스로 영화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건 정치부 기자가 정치인이 아닌 이치와 같다). 그러나 그 대가로 오늘날의 영화 주간지들은 날로 위세를 더해가는 영화 자본의 홍보 대행업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당하고 있다. 동반자로서가 아닌, 비판적 견제자로서의 위상을 다지지 못한 필연적 대가다. 오타쿠적 감성을 좇다 저널리즘을 홀대한 대가다.

주간지 시장의 열악함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겉으로는 대중지를 지향하는 포즈를 취하면서 홍보 대행을 수행하고, 한편으로는 흔들리는 정체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더욱 영화 근본주의적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게 작금의 영화 주간지들이 처해 있는 풍경이다. 대중 매체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동시대성과 사회성의 맥락을 놓친 것도 그 많던 영화주간지 독자들을 휘발시킨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나는 본다. 초창기의 씨네21에서 영화라는 문화적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던 독자들은, 극소수 문화 엘리트들만을 위한 배타적 취향의 향연장이 되다시피 한 '그들만의 리그'를 달가워하지 않게 됐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론을 구사해온 FILM2.0은 가격 경쟁력 하나로 처연하게 버티고 있다(물론 나도 그 공모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니 생존의 위협 앞에서 잔뜩 주눅 들어 개성과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있는 풍경이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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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종자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인류다. 이번주 FILM2.0 토크2.1 인터뷰로 누굴 했으면 좋겠냐는 편집장의 물음에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봉태규요." <가루지기>라는 영화가 지난 주말에 개봉했으니 개봉 이후의 반응에 대한 배우의 반응도 듣고 싶고,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틀 뒤, 섭외에 나섰던 취재팀장이 문자를 보냈다. "봉태규가 인터뷰 하기 싫다네요."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정성을 기울인 영화가 흥행에서 망가졌다. 게다가 원성도 자자하다. 배우로선 영화 개봉 전에 집중돼 있는 프로모션 일정에만 힘쓰면 되니 개봉 이후에, 게다가 영화에 대한 평가마저 뻑떱인 상황에서 굳이 인터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허나, 봉태규라면 흔쾌히 응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년전 <바람난 가족>을 계기로 인터뷰했을 때 봉태규는 재수 없는 고정 관념에 반감을 표시할 줄 아는 영민한 배우라는 인상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는 왜 영화를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사회의 질서를 강요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그 한심한 고정관념에 똥침을 찌르듯 나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었다. 헌데 이번에 봉태규는 배우 일반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고정 관념을 굳이 거스르지 않았다. 실망이다.

인터뷰는 기자의 질문에 배우가 답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고정 관념을 벗어나면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기자님, 이 영화가 그렇게 꽝이었어요?" 이렇게 그가 물었다면 나는 흔쾌히 대답해줄 용의가 있었다. 봉태규가 어느새 답변 기계가 된건가, 아니면 어쭙잖게 이미지 운운하며 폼잡는 선배 배우들에게 시덥지 않은 곤조만 배운건가. 영화를 놓고 밤새도록 소통할 줄 아는 에너지만 쏙 빼고?

수도 없었지만 또 한번 기대를 품은 배우에게 배신 당하는 기분이 든다. 그 대열에 봉태규가 포함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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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는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어디론가 정처 없이 여행한다는 게 괜히 낭만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단호히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치가 떨리도록 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부러라도 고독을 느끼고자 혼자 여행한다고 한다. 그이들을 존경한다.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인데, 그 외로움을 부러 느끼겠다고 떠나는, 철인 3종 경기 출전에 비견할만한 그 도전 정신을 어찌 존경할 수 없겠는가.

10여 년 전인가 생애 처음으로 단독 여행을 실천에 옮겼다.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도 뽑았겠다, 남해안과 동해안을 일주하는 코스에 의기양양 나섰는데, 이틀도 못돼 남해 어디쯤에서 끝내 청승을 떨고 말았다. 비 내리는 해질녘 숙소 근처를 어슬렁대다 우물쭈물 들어간 읍내 노래방에서 하필 ‘비처럼 음악처럼’ 을 혼자 부르던 끝에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던 것이다. 사무치게 외로웠던 게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나에게 한마디라도 얘기를 걸어준다면, 그에게 흔쾌히 술 한잔 살 용의가 돼 있었지만, 말도 잘 통하는 우리나라 땅 한쪽에서 철저히 타자가 돼 있는 나를 발견하는 기분은 단순한 씁쓸함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8년 전 미국 시카고에 갔을 때도 그와 비슷한 처절한 고독의 고문을 당했다. 가이드도 없이 공항에서 시카고 시내로, 시내에서 다시 인근 소도시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는데, 기차 역에서 예정된 숙소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는 걸 모른 채 지도상의 도로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걸어도 끝없는 도로와 벌판. 간혹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놀림감이 되기 딱 좋은 동양인 도보 여행자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매정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고립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은 뒤에야 겨우 알프레도 히치콕의 <사이코>에 나오는 듯한 여관을 발견하고 무작정 체크인을 했다. 역겨운 악취가 풍기는 방, 침대 시트에 묻어 있는 정체 모를 핏자국. 창 밖으로 비추는 ‘Vacant’ 라는 네온 간판만이 을씨년스럽게 이방인의 추레한 고독을 응시하고 있던 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한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지독한 고독의 여정이다. 혹시라도 혼자 여행하는 것이 전혀 외롭지 않다고 느끼셨다면 그 분은 필시 주위가 산만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신 분이거나, 아니면 득도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잘 알려진 로드무비에서 주인공은 왠만 하면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김인식 감독의 <로드무비>에서는 동성애 취향의 남자 둘에 둘 중 한 명을 짝사랑하는 여자 한 명이 동행하며 엇나간 짝짓기 게임에 열중한다. 월터 살레스의 <중앙역>에선 아줌마와 어린 꼬마가 동행하며 인간애를 발견하고, <레인 맨>에서는 자폐증 형과 싹수머리 저당 잡힌 동생이 티격태격 여행길에 나섰다가 형제애를 회복한다. 설령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해도 <비포 선라이즈> 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처럼 하룻 밤의 멋진 로맨스가 엮이기도 한다. 사실 많은 로드무비는 기본적으로 성장 영화다. 주인공들은 기나긴, 그러나 인상적인 여정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늘 누군과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그들의 여정은, 그러므로 과거의 지지부진한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극복, 또는 회복되는 시공간의 드라마인 셈이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왠만하면 혼자 여행을 떠나지 마시라. 혼자 떠나더라도 여행길에 동반자를 만드시라. 혼자 하는 여행은 내침하는 고독의 썰물에 벌거벗고 투항해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거센 절대 고독, 그 극단적 타자화의 상태를 온전히 이겨낼 정도로 자아가 강하시다면야 할 말 없지만. 어휴, 난 이제 엄두도 안 난다.

*여행주간지 트래비 최근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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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YTN 생방송 출연을 끝내고 저녁 기차 편으로 전주에 왔습니다. 2년 전인가 이곳 고사동에 짐을 풀었을 때는 왠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이곳 경기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었는데, 올해는 고사동에 걸린 루미나리가 한층 더 화려해져서인지, 아니면 노동절 휴일 인파가 몰려서인지 2년 전에 비해 활기가 넘치더군요. 암튼 영화제 분위기가 납니다.

잠자리를 가리는 버릇이 있어서 새벽 2시쯤에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만 6시쯤에 퍼뜩 눈이 떠졌습니다. 삼백집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아침을 떼우고, 프레스 카드를 받아들고는 근처 피씨방에 들렀는데 이제야 솔솔 졸리기 시작하니 큰 일입니다. 이따 오후 2시부터 관객과의 대화 모더레이터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게다가 첫 순서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일본 영화 <입맞춤>입니다. 감독과 더불어 주연 배우인 나카무라 토오루도 올 것 같은데...잔뜩 긴장이 돼서 잠시 숙소에 들러 토막잠이나 잘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지난 토요일에 체한 것이 아직도 내려가지 않고 있어 고생입니다. 배가 살살 아픈 가운데 지난 월요일 3M흥업에 썼던 <스피드 레이서> 리뷰를 다시 읽어 보니 (날라리아님 지적대로) 오타 투성이에 가관입니다. 짜증 섞인 글투가 당시의 제 신체 컨디션을 대변하는 듯 하더군요.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고 글도 건강하게 나오기 마련인데 말이죠.

어쨌든 영화에 대한 자신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썼다고 냉소를 퍼부어대는 '땡깡적' 댓글은 이미 익숙해져 있지만, 영화를 안보고 썼다고 독해하신 분들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읽어 봐도 안보고 쓴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그 놈의 익명성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니, 확 댓글 권한을 로그인 방식으로 바꿀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전주에 있는 동안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처럼 글도 올리고 사진도 올리고 하려 했는데, 컨디션이 '빠가야로'인 상태에서 짐을 꾸리느라 카메라는 챙겨 왔는데 연결 잭을 놓고 왔네요. 바보 같으니! 그래도 뭐...글이라도 올릴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cinem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