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사례로, 전 조선일보 기자 이동진 선배는 프리랜스 영화 기자이자 영화평론가이고 나와 한때 필름2.0에 함께 있었던 오동진 선배 역시 영화 평론가로 더 많이 불려진다. 김영진 선배(명지대 교수)는 씨네21 재직 시절부터 기자라기 보다는 사실상 영화 평론가로 불렸다.
저널리스트 선배들의 족적이 이러하다 보니 영화 매체 종사자들도 은연중에 이들 기자 출신 평론가들을 롤모델로 삼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러다 보니 팩트 위주의 르포 기사보다는 관점을 실은 비평적 아티클 쓰기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말하자면 이들의 장래 희망은 저널리스트라기보다 평론가라는 생각이 든다.
쓸데 없이 직업적 자존심이 거대한 나는, 스스로 한번도 평론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부끄럽게도 영화평론가 협회 회원으로 가입돼 있긴 하지만). 그 생각은 프리랜스로 나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를 평론가라고 소개하면 수정해 드린다. 기자라고 하면 소속을 물을 게 뻔해 프리랜스 냄새가 많이 나는 '저널리스트'라는 구차한 단어를 선택한 것이 가끔 스스로도 아쉽지만, 어쨌든 영화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평론가를 사칭하고 싶지는 않다.
결코 기자가 평론가보다 상위의 개념이라는 어쭙잖은 우월 의식 때문이 아니다. 평론의 전문성과 특수성이 분명히 존중 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론가라는 직함을 붙이기 위해선 적어도 석사 학위 이상의 전공 기간을 거쳤거나 그에 준하는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 주간지나 매체에서 일한 걸 토대로 평론가라면 대한민국엔 평론가라 할만한 이가 족히 수 백 명은 될 것이다. 개나 소나 평론가라면 진짜 평론가들을 모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영화 기자라는 직함을 고수하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평론가라는 호칭이 남발되는 현상에 대한 반발심도 작용한 것 같다. 그 현상의 이면에 평론가는 영화 기자보다 한 단계 앞선 개념이라는 무의식이 뒤따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딴에는 맞는 얘기다. 영화를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면에 있어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전달의 메커니즘까지 신경써야 하는 기자가 영화 미학 그 자체에 천착해 있는 평론가를 따를 수 없다.
그러나 두 직업 사이에는 분명히 고유의 영역과 각자의 전문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기자는 영화 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흐름에 관심을 갖는다. 박스오피스, 제작 인프라, 돈과 사람의 이동에 촉수를 들이댄다. 평론가가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기자는 감독 뿐 아니라 배우의 연기 패턴과 미술, 음악 쪽 종사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좇는다.
말하자면 평론가는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해 영화를 해석하고 관점을 제시하는 직업이다. 영화 기자는 하나의 영화를 둘러싼 무수한 사실을 수집하고, 그 가운데 관객들에게 유의미한 재료들을 제시하는 직업이다. 영화 기자는 또한 시의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마땅히 주목받아야 할 영화를 취사 선택해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가를 결정하는 '에디터'로서의 역할도 한다. 평론가와 영화 기자의 영역은 영화 산업이 발달할 수록 더욱 분명하게 전문화되어야 하는 서로 다른 영역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기자는 비평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영화 평론가가 가끔 스탭들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듯, 기자도 비평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크로스오버 현상은 예로부터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방법론이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경향적으로 저널 비평은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선택하는 재료를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기자의 비평은 그러므로 '프리뷰'에 가깝다. 평론가들의 비평은 비교적 훈련된 인문적 교양을 바탕으로 어떤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관점과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이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각도로 영화를 향유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평론가의 비평은 그러므로 '리뷰'에 가깝다.
그런데 요즘엔 기자들이 리뷰도 쓰고, 평론가들이 프리뷰도 쓴다. 마구 혼용돼 있다. 그러다 보니 객관을 가장한 주관적 글쓰기와 주관을 앞세웠으나 줏대 없는 글쓰기도 보인다. 어차피 영화 비평에 객관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나'를 분명히 드러내야 하는데 기자들은 습관적으로 '나'를 가리면서 가끔 설익은 자신의 관점을 객관적인 것인양 들이댄다. 그럴 바엔 아예 열 명의 평론가들을 인터뷰해 관점을 나열해 주는 게 더 객관적이다. 더 나은 방법은, 비평을 아예 평론가들에게 맡겨 버리는 것인데, 원고료 부담을 줄이려는 매체들의 편의적 선택이 기자들을 설익은 평론가로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와 평론가가 혼용되면 좀 어떠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사실 대수는 아니다. 그러나 관점은 홍수처럼 늘어나는데, 깊이 파고드는 취재력의 결과물은 점점 희박해져가는 것 같아 하는 소리다. 영화 기자도 저널리스트라면, 비평적 방법론 말고 우선 저널적 방법론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이는 물론 내 스스로에게도 함께 던지는 고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