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군 부대에서 군 생활을 보냈다. 열흘에 한번 꼴로 밤새도록 막사를 지키는, 이른바 CQ라는 걸 하게 돼 있었는데, 가끔 이른 새벽에 비상 훈련이 소집될 때면, 방마다 돌아 다니며 잠들어 있는 사병들을 깨워야 했다. "Alert"이라고 외치며 방문들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액센트가 2음절에 들어가 있는 이 단어를 크게 외치는 게 나는 힘들었다. 한글로 풀어 쓰면 '얼러트'이긴 하나, 앞의 '어'는 거의 들릴듯 말듯 '러~ㅌ' 정도의 발음이 나와야 한다. 생경하고 낯설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피부 노랗고 체구도 왜소한 내가 덩치가 산만한 미군 사병들을 향해 시침 뚝 떼고 '얼러트'도 아니고 '러~ㅌ' 하고 다니는 게 영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나는 자주 그 때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익숙한 척, 시치미 떼고 태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특히 누군가로부터 관리 받는 것도 싫지만 누군가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란, 정말 지랄맞도록 불편했다. 근엄한 척, 목에 힘주고 나조차 확신할 수 없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그 길이 이미 내가 다 걸어온 길이며 그래서 익숙한 것 같은 시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12년간의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건, 그래서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야인이 된 뒤에도 그런 상황은 끊이질 않았다. 요즘 주요한 밥줄이 되고 있긴 해도, 나는 여전히 방송 카메라 앞에 서거나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살짝 현기증이 돌 정도로 어색하고 불편하다. 거기서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고 있기란, 게다가 농담까지 툭툭 던지며 여유를 부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에겐 제작진으로부터 기대되는 임무가 주어져 있고, 나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최근 새로 시작한 오디언 닷컴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에도 재치 있는 '말빨'로 순발력있는 워딩을 들이댈 줄 아는 김태훈 씨 앞에서, 나는 곧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바보 스럽게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는 '러~ㅌ'라고 태연하게 외치는데, 나는 앞의 '어'가 안들리게 외치는 게 여전히 어색한, 그런 느낌.
어쩌면 이것은 앵벌이 지식 노동자로 살아감의 숙명이 아닐까. 낯선 상황에서 익숙한 척 하기. 익숙한 계절의 순환 속에서 평생 땅을 일구며 사는 농부들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어색함의 연속이란, 그들만큼의 정직한 노동을 하지 않는 데 따른 필연적인 대가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고단해도 흔쾌히 감수할 수밖에 없는.
'2008/02'에 해당되는 글 9건
- 2008/02/29 낯선 곳에서 익숙한 척 하기의 고단함 (8)
- 2008/02/24 개인성을 지키기 (4)
- 2008/02/23 공항의 지루함을 견디기 (2)
- 2008/02/11 Video killed the radio star (8)
- 2008/02/08 연민 없는 세상에 보내는 위안의 노래 (6)
- 2008/02/06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3)
- 2008/02/06 [음악 꽁트 #2] 롤라장의 추억 Call me (2)
- 2008/02/03 [음악 꽁트 #1] 첫 사랑고백의 BGM: Take On Me (4)
- 2008/02/02 갑상선 항진증 (6)
"저는...주말엔 외출하기가 힘듭니다."
"토요일 시간 안돼요?"
"네"
"바빠요?"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합니다."
"그럼 일요일은?"
"집에 있어야 합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요. 아내랑 시간을 보내야 하거든요."
순간적으로 뜨악한 표정들.
"이거 우리 중요한 일인데...주말에 시간을 좀 내봐요."
난 끝까지 주말은 안된다고 우겼다. 결국 약속은 월요일 이른 아침으로 잡혔다.
주말만큼은 '탱자탱자'하겠다는 내 소신은 가끔 사람들에게 세월 좋은 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몰두와 집중이 미덕인 사회이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혹은 주말까지 일을 해야 근면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온전히 '개인'으로서의 나에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삶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 어렵다. 하루 24시간, 7일간의 일주일을 쪼개고 쪼개 바쁘게 살아가는 분들에겐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런 방식의 삶은 내 자아를 한치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 살이는, 대체로 내가 수긍하는 방향성에 대한 동조의 행동으로 채워진다. 운이 좋으면 자발적인 동조이고, 운이 나쁘면 억지로 끌려가는 동조가 된다. 비교적 하고 싶은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나는 그럭저럭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그 조차 생계를 위한 것이 됐을 때는 흔쾌한 자발성의 발로라고 스스로 믿기 어려울 때가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대상에 대한 동조가 아닌, 내 스스로에게 동조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온전히 개인으로서의 나를 들여다보고, 조탁하고 전망하는 시간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대승적으로 올바른 동조의 대상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시공간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고 믿는다. 혹시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내게 그 대상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집단의 가치가 압도하는 세상 속에서 개인이 살포시 숨을 쉬는 시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리하여 개인이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낼 여유를 인정하는 것. 어쩌면 문화적 소양이란 바로 이런 개인성의 특질적인 영역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보라는 말 역시 개인의 행복이 최대치로 확보되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논하거나 문화를 말하는 이들조차 이 자명한 이치를 너무 쉽게 까먹는다.
국외 여행자에게 공항은 필요악과도 같은 공간이다. 공항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긴 하지만, 귀찮은 절차와 지루한 기다림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환전에 휴대폰 로밍, 탑승 수속, 보안 검색, 출국 심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110미터 허들 경기의 주자가 된 기분으로 통과하고 나면 보딩 시간까지의 황량한 여유가 느닷 없이 밀려온다. 스스로 흡연실에 유폐돼 기내에서 소진될 혈중 니코틴을 미리 꾸역꾸역 폐로 밀어 넣거나 딱히 살 물건도 없는데 면세점을 어슬렁 거리며,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된 폐쇄 공간에서의 자유 시간을 ‘죽때리고’ 있어야 한다. 긴 비행 여행을 마치고 나면 목적지 공항의 지루함이 아가리를 쩍 벌린 악어처럼 여행객을 맞는다. 콱 국적을 바꿔버릴까 싶을 정도로 한산한 내국인 줄과 달리 외국인 줄은 왜 늘 그다지도 길기만 한지. 수화물 찾는 곳에선 주인 손에 들린 공에 시선을 붙박은 고양이마냥 비슷비슷하게 생긴 여행 가방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2001년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필자
나 역시 공항은 늘 소중한 여행 시간을 좀 먹는 시간 낭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밴쿠버에 갔을 때는 하필 불법 체류 의심을 받은 한 동양인 여성의 뒤에 서는 바람에 꼬박 두 시간을 허비해야 했고, 뉴욕의 JFK 공항에선 입국 카드를 잘못 쓰는 바람에 ‘줄 맨 끝에 다시 서라’는 형벌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 모스크바 공항에선 느려 터진 전산망 때문에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이러다 보니 나는 비행기 안에서의 스무 시간은 참겠는데, 공항만큼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짐을 챙길 때마다 그냥 도시에서 도시로 ‘휘리릭’ 순간 이동하는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할 정도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터미널>(2004)의 무대, JFK 공항도 다르지 않다. 조국의 쿠데타 사태로 졸지에 무국적 사나이가 돼 입국을 거부당한 동유럽인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공항을 제 집 삼아 세상 밖으로 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된다. 떠나고 도착하는 이들이 총총걸음으로 빠져나가고 마는 그곳이, 나보스키에겐 끝 없는 기다림을 강요받아야 하는 감옥과도 같은 곳으로 돌변한 셈이다. 상상해 보시라. 당신이 공항에 갇힌 채 수 개월을 보내야 한다면? 어후~! 나 같으면 살짝 돌아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스필버그는 공항의 공간사회학적 단면을 극단적으로 확장한 상황 안에 주인공을 가둔 뒤, 그가 뿜어내는 어떤 에너지가 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관계를 미세하게,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들여다 본다. 그 에너지는 결국 나보스키가 내뿜는 인간애이며, 그와 똑 같은 감정을 가진 공항 종사자들의 측은지심이다. 지루함은, 내 곁에 사람이 있기에 견딜만 하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은 언젠가 끝이 난다. 스필버그 가라사대, 공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터미널> 2004, 스티븐 스필버그
*여행전문 주간지 '트래비'에 기고한 글입니다.
명색이 전문가라 모셔 놓고, 민망한 수준의 출연료(물론 회당 출연료 5만 원도 나쁘지 않은데 호강에 초친 소리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러나 부지런히 라디오 출연 5개를 해봤자 최저생계비를 살짝 웃돌 뿐이라면, 회당 출연료로 30-50만 원씩 주는 TV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건 인지상정 아니냐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로 차비나 받을라치면, 잘 나가는 개그맨들 한테 수 천 만원의 회당 출연료를 지급하는 방송국들이 과연 라디오를 매체로 인정하기나 하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우스갯소리로 라디오는 DJ가 아니면 개털일 뿐이다.
그나마 FM마저 전문 DJ들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 그 자리를 발음도 엉성한 연예인들이 장악했다. 인지도를 무기 삼은 가수 출신 DJ들이 조악한 음악 상식과 너저분한 교양으로 킥킥대고 있을 뿐, 새벽을 꼬박 새도록 감성을 자극했던 예전 라디오의 위력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였고, 라디오의 생존을 위해 지금은 라디오가 스스로 라디오의 정체성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새삼스럽지만, 수십 년 전에 나온 라디오의 장송곡을 다시 틀어 본다.
설이 끝날 무렵....예수와 체 게바라, 그리고 밥 말리를 떠올린다. 사람에 대한 연민, 진짜 낮은 곳에 임하는 가난한 위로의 속살을.
"저는 삶이란 궁극적으로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건 대단히 긍정적인 방식의 비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결국엔 죽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이잖아요. 살다보면 비극적인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마련이지만, 그게 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죠. 그래서 저는 비극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일이 좋습니다."
얼마전 개봉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를 보고 나니 다시금 팀 버튼이라는 감독의 정신 세계가 궁금해졌다. 영화를 본 한 선배는 "꼭 그렇게까지 잔혹한 장면을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안 본 게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과연, 그의 잔혹 동화적 비주얼의 세계는 이번에 조금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화성침공>에서 외계인의 머리통이 퍽퍽 터지는 장면이나, <슬리피 할로우>의 머리 없는 유령이 사람들 모가지를 댕강댕강 자르는 것까지는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하며 봤던 나로서도 <스위니 토드>의 목 따는 장면에서만큼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런 하드고어적인 시각적 장치와 뮤지컬이라는 청각적 장치가 결합하고 나니 뭔가 더욱 기묘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판의 미로>가 뿜어내던, 판타지로 판타지를 격파하려는 현실의 분노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느낌.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정리해 실은 이 책에서 팀 버튼은 특유의 어리숙하면서도 시니컬한 말투로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자의 고뇌를 말하고,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시절을 악몽처럼 회고한다. 그의 성격으로 보건대, 보수적인 디즈니의 공기가 답답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성장기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과 원만하지 않았던 부모와의 관계 등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아웃사이더적 정서를 설명해준다.
그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조니 뎁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애니메이션 <유령 신부>의 목소리 출연을 동시에 진행하는 데 대해 조니 뎁이 매우 투덜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낮과 밤에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선, 조니 뎁에 대한 그의 무한한 존경과 애정이 물씬 묻어난다.
책 내용 가운데,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브렌스키는 팀 버튼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버튼은 현재 우리의 문화를 축복하면서 동시에 그 면전에 대고 침을 뱉는다. 그 점이 바로 그의 작품이 가지는 낯설지만 멋진 매력이다. 그는 화가 나서 침을 뱉지만 그 침은 달콤하다."
당시의 롤러 스케이트는 지금의 롤러 브레이드와 달리 신발 앞 뒤로 바퀴가 2개씩 나란히 달려 있었다. 신발 앞코에 붙은 뭉툭한 고무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체중이 가벼운 초등학생이 롤러 스케이트를 타면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이 뛰어다니듯, 거의 신발에 끌려 다니는 것처럼 보일 지경으로 무게도 꽤 나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스케이팅에 통달하게 되면 그 중력의 압박을 회유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되는데, 나 역시 중학교 1학년 쯤에는 그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거창하게 말하면, 관건은 바퀴가 굴러가는 운동 역학에 내 몸을 맞추되, 바퀴의 물리적 속성을 본능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었다. 그 통제력에 따라 옆으로 가다가 뒤로 가기, 연속 동작을 통해 마치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듯한 동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를 잡을 때! 가능한 최대 가속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적절한 시점에 앞코를 슬쩍 내려줌으로써 사사사악 미끄러지듯 제동을 거는 것인데, 요 지점에서의 내공이 진정한 '뽀다구'를 만들어준다. 롤러맨에게 '뽀다구'는 중요한 미덕이었다. 롤러장에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의상도 중요하긴 마찬가지. 지금의 스키니진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하체 곡선이 완연히 드러나는, 그러면서도 신축성이 뛰어난 '쫄쫄이' 스판 청바지, 여기에 깃을 살짝 세운 청재킷을 맞춰 입어줘야 롤러장 드레스 코드가 완성된다. 물론 스판 청바지를 구입할 형편이 못된 내 경우, 누나로부터 물려 받은 검정색 쫄쫄이 골덴 바지로 만족해야 했지만.
아무튼 내가 롤러장 죽돌이가 된 것은 인간의 몸에 부착된 바퀴가 속도와 동작 반경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게 해준다는 해방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롤러장은 그 자체로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오는 일종의 음악감상실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는데, 꽤 큰 롤러장엔 디제이 박스까지 설치돼 있을 정도였다.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나 ABBA의 'Gimme Gimme Gimme'가 흘러나오면, 나는 신나게 코스를 돌았다. 그러나 혹독한 개인훈련을 통해 습득한 묘기(?)를 선보이기 위해선 다른 음악이 필요했으니, 그건 바로 Blondie의 'Call Me'였다. 디줴이의 탁월한 선곡에 의해 Call Me의 전주부가 흘러나오면 나는 기대고 서 있던 기둥을 힘차게 박차고 코스로 나오며 "칼러미야, 칼러베이베"를 외침으로써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어떤 '끼'를 끄집어내곤 했던 것이다. 여학생들의 므흣한 시선을 독점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칼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며, 여덟 개의 바퀴가 내 몸을 열락의 경지로 실어다주는 듯한 짜릿함을 만끽하며.
하지만 그건 단지 자위적 '뽀다구'에 불과했다. 내가 롤러장에서 '꼬신'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나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같은 학교 같은 써클의 M이라는 여학생이 난데 없이 프로야구 관전을 제안해 왔던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헌데 그녀는 느닷없이 Y라는 또다른 여학생과의 동행을 요구했으니, Y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자 당시 그녀의 절친한 친구 사이였기에 나는 흔쾌히 그 이상한 데이트에 응했다.
여전히 옷깃을 스며든 찬 바람을 묵묵히 견디며 지지리도 재미 없는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나온 뒤, M과 Y는 잠실 야구장 근처의 석촌호수로 날 안내했다. 나는 그날 폼 잡느라 가볍게 입고 나간 옷 덕분에 여전히 꽤 시린 봄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다. 평소 별 관심도 없는 프로야구를 반나절 가까이 구경하느라 몸과 마음은 이미 파김치가 돼 있었던 터라, 떨떠름한 기분으로 뒤쫓아간 석촌호수에서도 두 여학생의 '지들끼리 수다'를 멀찌감치 관전하며 터덜터덜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소외감과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 오자, 나는 여학생 두명과 한꺼번에 데이트하는 건 할 짓이 못된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해질 무렵이 다 되어서 M과 Y와 나는 집으로 오는 버스에 함께 올랐다. 버스 안에서도 둘만 속닥속닥 수다를 떠는 두 여학생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또래 여학생들은 도대체 삼각 소통의 미덕을 모르는걸까?" 제일 먼저 내리게 된 나는 "안녕"하고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Y가 벌떡 일어나더니 같이 내리자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M과 Y는 다음 정거장에서 함께 내려야 해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M의 한마디. "네가 Y를 집까지 좀 데려다줄래? 나랑 내리면 Y는 혼자 가야 하니까 오늘 신사도 좀 발휘해봐."
어쨌든 Y와 나는 함께 버스에서 내려 M의 지시(?)대로 신사도를 발휘하기 위해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뭔가 연출된 시츄에이션이라는 느낌이 든 순간, 순진한 Y가 추궁도 안했는데 먼저 털어 놓았다. "사실은 M이 네가 누굴 좋아하는지 좀 물어봐 달래. 자기가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좀 쑥쓰럽다나."
갑자기 닭살이 돋는 듯한 느낌. 친구를 활용해 우회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타진해 보려는 M의 고전적 시도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고 물었다.
"내가 누굴 좋아하냐고?"
"응"
그 순간, 속에서 장난기가 꿈틀댔다.
"Y, 그렇게 묻는 너는 누굴 좋아하니? 네가 말하면 나도 말해줄게."
Y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예상과 달리 그리 오래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너인 것 같아."
돌이켜 보면 참 유치한 대화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거리의 레코드 가게에서 A-ha의 'Take On M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장박동과도 같은 전주부, 충동질하는 듯한 건반의 리듬이 내 속의 무의식을 깨우는 듯한 느낌. 우리는 한참동안 말 없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M을 배신하고 싶은 장난기의 연장선인지 진심인지 나조차 분간 못하는 심리 상태로 Y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사실 너를 좋아해."
그날, Take On Me는 그렇게 내 유치하고 장난스러웠던 첫 사랑 고백의 BGM이 됐다. Y와 나는 다음날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고, M은 그 이후 나에게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Y를 사랑하게 됐고, 기말고사 전날 그녀의 생일선물로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본따 밤새도록 그림과 사진 합성 판넬을 만들었다. Y의 실사를 오른쪽에 배치하고 왼쪽에는 마치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나를 그려 넣었다. 다음날 아침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터졌다. 어머니는 내 목덜미를 두드리며 안쓰럽게 말씀하셨다. "아이구, 우리 아들 너무 열심히 공부하다가 코피가 다 나네."
어쨌든 Y는 판넬에 감동했고, 나는 기말고사에서 죽을 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Y와 나는 2년 뒤 헤어졌다.
요즘 제가 괜히 무기력하고 피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칠전 피 뽑은 결과 보러 오늘 아침 병원에 갔더니 의사께서 저한테 '갑상선항진증'이라는 진단을 하사해주셨습니다. 갑상선 관련 질환은 주로 여성들이 걸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 놈이 저한테 찾아왔네요.^^그나마 눈이 튀어나오거나(!) 체중이 줄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은근히 걱정했던 간 쪽의 상황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일단 안도의 한숨. 은근히 알콜성 지방간을 의심했었는데 말이죠. "당신 술 더 마시면 끝장이야'라는 경고를 듣게 될 것 같은 예감이었는데, 간은 튼튼하다니 음주를 중단할 충격요법은 물 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요. 뭐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얘긴데, 신진대사가 과도하게 활발해져도 문제군요. 가끔 글중에 꺼드럭거리는 객기를 부리는 것도 다 갑상선 항진증의 결과일까요?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중용의 덕이 절실하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연초부터 반성할 일이 참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