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눈에 번쩍 뜨일 영화 한 편을 봤다. 리들리 스콧의 <아메리칸 갱스터>다. 적지 않은 평론가들이 냉소했던 그의 전작 <킹덤 오브 헤븐>조차도 십자군을 불러내 기독교 근본주의의 팽창주의 속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담아낸 걸작이라며 감읍하며 봤던 나로선 이번 영화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 것도 당연했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1960~1970년대 미국 사회를 대조적으로 상징하는 두 명의 실존 인물, 마약으로 할렘을 지배한 갱스터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와 그의 뒤를 쫓는 청렴한 마약 수사관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영화다. 갱스터 누아르 장르의 전형성을 따르는 듯 비켜가며 새로운 전형을 창조해낸 연출 내공은 둘째로 치고,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무릎을 칠 수밖에 없게 된 지점은 사실 따로 있었다. 세상에 대응하는 두 인물의 행동과 선택을 텍스트 삼아 미국 사회에 내재한 폭력성과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근원적 모순을 한꺼번에 꿰뚫어 보는 리들리 스콧의 용감무쌍한 통찰력이었다.
과연 노장의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파릇해지는 듯, 그는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발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장르에 통달한 장인의 실력으로 관객의 폐부에 아로새긴다. 1970년대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이른바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정점에 서 있었다면, 포스트 9.11 시대의 할리우드에는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장이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대의 관객과 창작자가 함께 발 딛고 서 있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영화가 설득력 있게 의문을 표시하는 풍경은 언제나 눈부시다. 내가 보기엔 요즘 나오는 일련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렇다. <아메리칸 갱스터>와 더불어 올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상을 다투게 될 또 다른 걸작 <마이클 클레이튼>이나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차별의 정치학을 통찰하는 유쾌한 영화 <헤어스프레이>같은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들은 확실히 노는 물이 다르군’ 하는 질투심과 감탄이 뒤섞인다. 지난해 내가 본 최고의 걸작 <시리아나>는 물론이고, 서구인의 럭셔리한 욕망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추잡하게 착취하고 있는지를 묘파한 <블러드 다이아몬드>, 세계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초강대국의 가공할 네트워크가 개인을 무력화하는 풍경을 액션 스릴러의 틀 안에 버무린 <본 얼티메이텀>도 그런 감상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영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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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고발에 관해 고찰 <마이클 클레이튼>(좌), 인종과 외모에 대한 유쾌한 승리 <헤어스프레이>(우) |
내가 '노는 물이 다르다'며 사뭇 문화 사대주의적 관점을 들이대는 이유는, 이들 영화들이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는 진부한데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들릴만한 질문들을 바로 그 신자유주의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내부로부터 다시 끄집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지금,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 영화를 흔쾌히 ‘올바름의 영화’로 묶기를 좋아한다.
제국주의니, 쇼비니즘이니 하는 비판 틀이 진부함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작금의 비평 환경을 상기한다면, 이들 영화를 올바름의 영화라는 범주로 묶는 이런 시도조차 촌스럽게 들릴 것 같다는 걱정을 아예 접어둘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이들 영화들이 이 시대의 많은 관객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을 것이다. 영화가 현실 감각을 상실했을 때 일회용 서비스 상품으로 전락하고 말 듯, 거꾸로 현실을 정치하게 상기시키는 이들 영화들이 영화가 여전히 예술로 대접받는데 필요한 시의적인 방법론을 실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요즘 이렇게 할리우드에서 부쩍 ‘정신 차린’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을 두고 많은 평자들이 9.11 테러와 이라크 전의 영향을 꼽고 있다. 처음에는 미국적 가치를 경멸하는 서슬 퍼런 적개심이 실재한다는 것에 놀라 자빠졌던 그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은 이라크 전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침략 전쟁에 다름 아니라는 당혹할만한 상황 인식에 봉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성과 ‘딴따라’가 공존하는 할리우드는 뉴욕이 정체 모를 세력에게 공격당한다는 설정의 영화를 되풀이해 만들어냄으로써 9.11의 공포감을 재활용하며 미국의 정치 외교적 선택에 대한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무의식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한편,‘미국이 왜 이 지경까지 왔나’ 라는, 우리로선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들로선 뼛속 깊이 절실한 고민을 진지하게 곱씹는 작품 역시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2006년과 2007년에 나온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그 같은 현상을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리우드의 이런 경향을 바라보며, 세상의 공기가 험악해질수록 창작자들은 잠에서 깨어나기 마련인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베트남 전의 상흔이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부른 것에서도 그 같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패전의 참담함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즈 야스지로가 꽃 피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비단 영화뿐이랴. 눈부신 러시아의 예술적 유산이 극악무도한 짜르 전제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솟아 나왔던 것임을 기억하다시피, 엄혹한 현실의 무게감은 예술가에겐 각성제나 다름 없을 때가 많았다.
이제 새해를 맞이한 한국사회의 현재로 시선을 돌려보자.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가 복지와 분배의 외침을 이겼다. 실적의 논리가 도덕성을 압도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가 하늘 높이 나부끼는 가운데, 승자 독식의 정글에서 낙오된 이들은 점점 삶의 극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영화계라고 다른가? 다시금 영화는 문화 산업의 선봉으로서의 존재 가치만을 처연하게 확인 받을 뿐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영화계의 주류들에게조차 외면 받고 저 멀리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가운데 영화계는 영화를 만들어도 관객이 안 든다며 울상이다. 영화 투자수익률이 -60%를 넘어섰으니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을 넘어 그야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의 분위기다. 오죽하면 영화계 단체들이 욕 들어 먹을 것 뻔히 알면서 ‘영화 관람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까지 발표했을까. 지금의 상황을 두고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이미 끝났다고 비관적 진단을 내놓는 이들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들의 울부짖음이 문화 소비자들에겐 그다지 절실하게 들려오지 않는 것 같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산업 내부의 불합리한 구조를 방치한 대가로 해일 같은 불황이 닥치자 누굴 향해야 할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타깃 없이 부르대는 절박한 목소리는, 불행히도 울림이 크지 않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떠받쳤던 주 소비자층, 즉 20대가 이른바 '88만 원 세대'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머리로는 그 심각함을 알겠는데, 마음으로 동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척박한 현실로 내몰릴 때, 한국영화는 그들에게 일회용 위안을 제공하는 대가로 현상적인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만족해 왔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현실의 각성제를 자임함으로써 영화가 여전히 예술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영화는 배가 불러 있었다. 안으로 곪고 있었다 할지라도 적어도 관객들을 만나는 많은 영화들이 그래 보였다. 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해 FTA에 반대해 싸웠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 드리운 신자유주의의 그늘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 보인 한국 영화를 만난 기억이 별로 없다. 영화인들이 반 FTA 투쟁을 위해 연대한 농민, 그들의 구체적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채집해 독창적으로 제시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는 굳이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로만 다뤄질 수 있는 것인가? 극영화의 장르적 틀 안에서는 도저히 영화적인 소재로 승화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거기에 대한 현실적 답변은 하나일 것이다. ‘돈’이 안 되는 구태의연한 소재였기 때문이며, ‘올바름’을 논하는 영화는 진부한 접근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90년대 반짝 했던 뉴코리안 시네마의 유산을 폐기처분하고 산업적 팽창기의 착시 현상에 도취됐던 한국영화는, 이제 그 대가로 스스로 장기 침체의 암운 속에 갇혀 버린 신세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대, 우리의 예술가들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우리의 영화 문화는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 계속 잠들어 있을 것인가, 2008년이 막 시작된 지금,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컬쳐뉴스(www.culturenews.net)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