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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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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고 또 하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중략) 물론 나의 생각과 결정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행동은 그에 앞서 이미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단순히 그대로 수행하지는 않는다.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원천이 있으며,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결정은 나의 결정이듯이 나의 행동 역시 독자적인 방식으로 나의 행동인 것이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레


가끔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생각과 결정, 즉 이성의 힘을 믿는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작가의 표현대로 '그것'의 힘에 이끌리고 말 때 말이다.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무언가가 행동의 순간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생각과 결정이 아니라 수많은 행동에 의해 순간순간의 결을 축적해 나간다.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을 그가 한 행동으로 기억하게 되듯.

아마도 이 책의 두 남녀, 그러니까 열 다섯살 남자와 서른 여섯 여성의 사랑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어나기 힘든 파장이 둘 사이에 일어났고, 남자는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고, 샤워를 함께 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행동이 남긴 기억은 두 사람의 남은 인생을 규정하고 또 다른 행동을 유도한다. 때론 서로로부터 도피하고, 때론 서로를 배신하면서.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곧 개봉한다길래 뒤늦게나마 얼른 사서 읽었다. 언뜻 성숙한 여인과 소년간의 꽤 에로틱한 관능의 향연만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 소설은 역사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세대를 관통한 상처의 상속에 대한 의미심장한 알레고리를 선사한다. 어쩌면 나의 행동은 역사가 내 유전자에 새겨 놓은 무언가에 의해 강제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디 아워스>의 스티븐 달드리와 심리 묘사의 달인 케이트 윈슬렛이 합작한 영화야 보나마나 명불허전이겠지만, 원작 소설의 아우라는 그것대로 과연 대단한 것이었다.
Posted by cinem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