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하철 역에서 불심검문을 당할 때가 있다. 의경이 경례를 붙여 올리면서 다가온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일단 멈춘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보여주지 않고 반문한다. "제가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을 권리가 있죠?" 의경은 당황한다. "네, 권리는 있지만 협조해주시죠." 끝까지 개긴다. "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가도 되죠?"

대체로 불심검문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 왔지만, 가끔 독한 의경을 만날 때가 있다. 한 경찰이 검문에 응하지 않고 갈길을 가는 나를 쫓아와 팔을 잡은 적이 있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화를 냈다. "경찰이 내 몸에 손을 댈 권리가 있나요?" 의경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에 떼며 복수하듯 쏘아 붙였다. "좋아요. 그냥 가시는데, 권리 권리 하지 말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도 좀 생각해 보세요." 나는 어이 없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경찰이 나한테 훈계할 권리 있나요?"

진짜 그렇다. 세금을 내도 내가 더 많이 냈는데, 새파란 의경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운운한다. 병역의 의무까지 꼭꼭 채우고 나온데다 해마다 예비군, 민방위까지 충실히 수행한 나에게. 때려 주고 싶었으나 공무집행방해죄로 쇠고랑 차기는 싫어 인내심을 발휘했다.

사실 내가 불심검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때 경찰의 불법적 검문에 낚여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강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콩밥까지 먹었다. 시위 현장에 대학생 신분으로 지나갔고 가방 안에 사회과학 서적이 있었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그 이후로 나는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니 검문에 응하지 않고 건방 떠는 나같은 시민들을 그들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 그건 불합리해도 한참 불합리했던 과거에 대한 현재의 응징이므로. 파르르 떨며 불량 시민에게 분노를 표현했던 그 의경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도 이런 맥락을 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추격자>가 공권력을 한껏 조롱하는 걸 통쾌하게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Posted by cinemAg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