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블로그 '3M흥업'의 글들은 종종(요즘은 자주) 논쟁을 촉발시킨다. 고정관념이나 인습을 비틀어 보고 싶어하는, 필진들의 약간 삐딱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때문에라도 자주 악플의 역습을 받곤 한다. 그래서 내 자신이 글을 쓸 때나 다른 필진들의 글이 올라오면 '흠...이거 악플 좀 먹겠는걸?' 하며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악플들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것에도 내성이 생겼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더러 그걸 즐기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세상에 욕 먹는 걸 즐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악플들조차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의 범주로 인정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그것을 포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을 뿐이다. 댓글은 세상이 우리가 제기한 주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유용한 재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댓글의 특징에 대해 경험적으로 체득한 몇가지가 있다. 우선 능동성을 요구하는 댓글이라는 매개체의 속성상,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매우 극소수라는 것이다. 지난 5월 오픈한 뒤 지금까지 3M흥업의 누적 방문자수 4백 60만여 명 가운데 댓글을 남긴 분은 불과 3천 여 명 정도다. 그러니 0.1%에도 못미치는 방문자들이 댓글을 남긴다는 얘기다. 거기서 또 악플을 추리면 퍼센티지는 더욱 줄어든다.
이 극소수의 의견이, 단지 글로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방문자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일종의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니 이것이 악플에 대범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다.
또 하나, 악플러의 속성상, 상당히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주의를 끌수 있기 때문일 것이며, 악플의 상당수가 논조에 대한 반론보다는 포스트 주인에 대한 상처 내기가 주 목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분들은 그냥 저주를 배설하듯 싸고 빠진다. 그러니 거기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의미가 크지 않은 또 한가지 이유가 추가된다.
100개 안팎의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포스트의 경우, 댓글의 흐름은 일정한 양태를 보인다. 처음엔 몇 개의 냉소 또는 찬동, 그리곤 줄줄이 악플들이 달린다. 필자의 경우는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숨을 고르는 편을 택한다. 시간이 지나면 필자를 대신해 악플들과 싸워주는 백신 댓글러들이 활동을 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험악한 정글처럼 보이던 댓글의 세계에도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이 이뤄진다.
세상이 그렇다. 진보가 있다면 보수가 있고, 찬동이 있다면 반동이 있다. 리영희 선생께서 갈파하셨듯,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게 돼 있다. 한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신기하게도 자율 조절 기능이 작동하는 게 자연계의 이치다. 그러므로 악플 따위에 상처 받을 일이 아니다. 또 한가지, 악플은 악플이지만, 그 악플을 가능하게 한 포스트는 이미 더 큰 권력이라는 것만 상기하면 된다.
가끔 표현 방식과 구사 언어의 차이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물론 없지 않다. 이럴 때는 악플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 즉 서브 텍스트를 파악하기 위해 한번쯤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파악이 안되고, 그냥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삭제'라는 또 하나의 권력을 주저 없이 휘두르면 그만이다. 그건 내가 상처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댓글 역시 포스트의 연장이기 때문이여, 다른 방문자들이 불쾌감을 갖게 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다.
악플들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것에도 내성이 생겼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더러 그걸 즐기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세상에 욕 먹는 걸 즐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악플들조차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의 범주로 인정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그것을 포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을 뿐이다. 댓글은 세상이 우리가 제기한 주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유용한 재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댓글의 특징에 대해 경험적으로 체득한 몇가지가 있다. 우선 능동성을 요구하는 댓글이라는 매개체의 속성상,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매우 극소수라는 것이다. 지난 5월 오픈한 뒤 지금까지 3M흥업의 누적 방문자수 4백 60만여 명 가운데 댓글을 남긴 분은 불과 3천 여 명 정도다. 그러니 0.1%에도 못미치는 방문자들이 댓글을 남긴다는 얘기다. 거기서 또 악플을 추리면 퍼센티지는 더욱 줄어든다.
이 극소수의 의견이, 단지 글로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방문자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일종의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니 이것이 악플에 대범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다.
또 하나, 악플러의 속성상, 상당히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주의를 끌수 있기 때문일 것이며, 악플의 상당수가 논조에 대한 반론보다는 포스트 주인에 대한 상처 내기가 주 목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분들은 그냥 저주를 배설하듯 싸고 빠진다. 그러니 거기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의미가 크지 않은 또 한가지 이유가 추가된다.
100개 안팎의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포스트의 경우, 댓글의 흐름은 일정한 양태를 보인다. 처음엔 몇 개의 냉소 또는 찬동, 그리곤 줄줄이 악플들이 달린다. 필자의 경우는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숨을 고르는 편을 택한다. 시간이 지나면 필자를 대신해 악플들과 싸워주는 백신 댓글러들이 활동을 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험악한 정글처럼 보이던 댓글의 세계에도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이 이뤄진다.
세상이 그렇다. 진보가 있다면 보수가 있고, 찬동이 있다면 반동이 있다. 리영희 선생께서 갈파하셨듯,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게 돼 있다. 한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신기하게도 자율 조절 기능이 작동하는 게 자연계의 이치다. 그러므로 악플 따위에 상처 받을 일이 아니다. 또 한가지, 악플은 악플이지만, 그 악플을 가능하게 한 포스트는 이미 더 큰 권력이라는 것만 상기하면 된다.
가끔 표현 방식과 구사 언어의 차이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물론 없지 않다. 이럴 때는 악플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 즉 서브 텍스트를 파악하기 위해 한번쯤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파악이 안되고, 그냥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삭제'라는 또 하나의 권력을 주저 없이 휘두르면 그만이다. 그건 내가 상처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댓글 역시 포스트의 연장이기 때문이여, 다른 방문자들이 불쾌감을 갖게 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