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이든 쌍방이든, 모든 관계는 기대를 낳고, 기대의 총량은 관계의 지속성과 경향적으로 정비례한다.
문제는, 관계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러 문제가 파생된다.
기대는 파생되는 문제의 핵심에 놓인다.
상대의 행동이 기대와 어긋날 때, 갈등이 불거지고 균열이 생긴다.
갈등과 균열이 되풀이될 때, 흔히들 어떤 종류의 심리적 포기 상태에 이르는데,
관계 자체를 냉소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때도 있다.
이런 이들에겐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고백컨데, 내게도 이런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
실제로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난 경험을 했기 때문인데,
부끄럽게도 그 파탄 난 관계는 혈육이었다.
내 경우, 기대보다는 기대를 받을 때 두려움이 커진다.
종종, 내 삶을 파고든 관계 파탄의 상황은 대개 나에 대한 누군가의 기대치를 내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나로선 거부할 수밖에 없었지만,
상대항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적절한 설명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기에 그들의 기대치가 너무 컸거나,
그들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다.
이게 변명으로 들린다면, 이렇게 말하자.
내가 거짓의 기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관계로부터 도망다니며 살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고 숙명이다.
그러나 살얼음을 밟다가 빠져본 경험이 있는 자가 다시는 얼음 주변에도 가지 않듯,
나는 욕망하되 관계하지 않는 기이한 관계,
혹은 관계가 아닌 관계,
맺지 않되 이어진, 아주 황당무계한 그런 관계의 이데아를 설정해 놓고 서성거린다.
얼음 호수 저편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바보 같지만, 그렇다.